2009년 딸이 태어나고 그해 4월 3개월짜리 아이를 업고 증권사에 가서 주식계좌 트고부터 아마도 내 기억에는 2009년 11월부터 파생이란 걸 알게 된 듯싶다.
그때 나는 절절했던 마음으로 머든 배우고 머든 도전하고 있었다. 신랑이랑 처음 만나 이 사람이다 하고 새 삶을 시작하면서 가진 것 없는 둘이서 두 손을 맞잡고 오로지 열심히 살아야 하고 태어나는 애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절절함
그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 것이라는 그 의지 하나만이 작동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둘이서 시작할 때 현금 2000만 원 전셋집 구하는데 5000만 원 3000만 원 대출이었고 그나마 신랑월급이 그때는 작지 않았다
2008년도 결혼하고 그때 내 나이 36 신랑은 39 늦은 나이에 결혼한 것만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앞에 놓인 인생시작이었다.
누구나 결혼하면 행복할 거라고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착각 속에 빠지다 보면 다투고 힘들고 후회하고 한다. 난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현실에 직시하여 빨리 일어설 생각부터 했던 것 같다. 운 좋은 건지 바로 임신하여 일을 열심히 하던 내가 집에서 하루종일 그냥 신랑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래서 아마도 컴퓨터에 접속하게 되고 "잘살려면 ""돈을 벌려면"글자를 많이도 검색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온갖 재테크라고 생각하는 건 모조리 찾고 공부하고 열심히 부딪치고 하며 노력했다.
그때 금융위기 시절 이자를 8프로대 준다고 하여 임신 8개월 지하철 타고 서울 프라임 저축은행? 거기에 가서 적금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줄이 길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신랑 월급에 내가 버는 돈 합쳐서 300만 원 정도 생활비는 둘이 입에 많아봤자 한 달 30만 원 정도 각종 공과금 이자 70 정도 그 나머지는 분할로 적금을 들었다.
그 기억이 난다. 한 달 야채도 동네 시장이 열릴 때 한꺼번에 일주일치 계산해서 국거리 나물반찬으로 사면서 맨날 시장 아줌마랑 흥정하여 더 많이 더 싸게 받아왔었다. 지금이야 더 좋은 거 딱 오늘 먹을 것만 사지만...
그래서 지나갈 때마다 아줌마가 나부르며 오늘 이런 게 좀 싸니까 하고 안 좋아진 야채는 나한테 떨이로 넘기기도 했다.
난 개의치 않고 고맙게 생각했다. 그냥 본인이 집에 가서 먹으면 될 수 있는 것도 열심히 사는 나를 보고 그리 마음 쓰는 거라고...
그때 결혼하기전에 마사지샆에서 잠깐 일했었는데 거기 부동산 다니는 언니가 인천 송도에 공공임대 아파트 나오는데 잡을수 있으면 잡으라고 그거 롯또 당첨되는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정보를 주었다.
그때 그언니는 나에게 천안에 있는 홈피스텔? 여기도 재개발 들어가니 잡으라고 그래서 없는돈 있는돈 끌어다 천안과 인천 송도에 공공임대를 잡았다
그다음 이야기로
2.경매를 배우다
천안은 아직도 14년이 지나가는데 소식이 없다 다행히 인천 송도 집은 운좋게 당첨이 되였고 거기서 둘째 아들을 큰애랑 연년생으로 낳았다. 그리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컴퓨터 검색을 했고 "텐인텐 "카페를 알고 되였고 거기서 경매에 대해 알게 되였다.
그렇게 나는 경매학원에 그때 돈 80만원으로 등록을 했죠 이제는 돈벌수 있을것 같았어요 아주 많이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다르더군요 배우고 볼줄은 아는데 그럼 경매에 참여할 10프로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다보니 진짜 돈되는건 찾았다 해도 내가 할수 가 없더라구요.
그때당시 내 수중에는 적금도 다 털어서 천안 빌라 그리고 송도공공임대 보증금 해서 총 6천만원이라는돈을 다 털어서 넣은상태였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나에게 시간은(많이 늦게 결혼한) 정말 소중하기에 다른사람들이랑 동급이 되려면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고싶지 않아서 였다
아이를 낳았으니 잘 키우고싶은건 이세상 어느부모도 다 그리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열심히 도전하려고 했던것 같다.
그때 공공임대 보증금 담보로 80프로까지 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해줘서 나는 그돈으로 노량진에 있는 빌라를 경매로 낙찰받게 되였다 나에게 첫 경매 노량진 빌라 1억 6000 큰애를 어린이집 보내고 둘째를 업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갔다.
그냥 자기 수중에 있는 돈으로 해야하는거니 1억 넘어가는건 찾을수가 없었죠 물론 잘하시는분들은 왜 없어 하겠지만 초보자에게는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수도권 변두리에 빌라들밖에 검색할수가 없었고 거기를 낙찰받아도 돈이 될지 안될지 미지수인거더라구요
그렇게 나의 재테크는 시작되였다.
다음이야기로
3.디지털 노마드의 길
천안은 아직도 14년이 지나가는데 소식이 없다 다행히 인천 송도 집은 운좋게 당첨이 되였고 거기서 둘째 아들을 큰애랑 연년생으로 낳았다. 그리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컴퓨터 검색을 했고 "텐인텐 "카페를 알고 되였고 거기서 경매에 대해 알게 되였다.
그렇게 나는 경매학원에 그때 돈 80만원으로 등록을 했죠 이제는 돈벌수 있을것 같았어요 아주 많이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다르더군요 배우고 볼줄은 아는데 그럼 경매에 참여할 10프로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다보니 진짜 돈되는건 찾았다 해도 내가 할수 가 없더라구요.
그때당시 내 수중에는 적금도 다 털어서 천안 빌라 그리고 송도공공임대 보증금 해서 총 6천만원이라는돈을 다 털어서 넣은상태였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나에게 시간은(많이 늦게 결혼한) 정말 소중하기에 다른사람들이랑 동급이 되려면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고싶지 않아서 였다
아이를 낳았으니 잘 키우고싶은건 이세상 어느부모도 다 그리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열심히 도전하려고 했던것 같다.
그때 공공임대 보증금 담보로 80프로까지 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해줘서 나는 그돈으로 노량진에 있는 빌라를 경매로 낙찰받게 되였다 나에게 첫 경매 노량진 빌라 1억 6000 큰애를 어린이집 보내고 둘째를 업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갔다.
그냥 자기 수중에 있는 돈으로 해야하는거니 1억 넘어가는건 찾을수가 없었죠 물론 잘하시는분들은 왜 없어 하겠지만 초보자에게는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수도권 변두리에 빌라들밖에 검색할수가 없었고 거기를 낙찰받아도 돈이 될지 안될지 미지수인거더라구요
그렇게 나의 재테크는 시작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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